한국인이라면 익히 아는 어휘 조선(朝鮮). 학교 이름으로, 상품 이름으로, 또는 호텔, 교통기관, 단체, 회사 등의 명칭으로 널리 이용되는 것이 바로 이 어휘이다. 원래는 나라의 이름이었던 이 어휘가 지금은 생활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명칭은 수십 가지에 이른다. 민족이 스스로 자기 나라 이름을 기록해서 남겨 놓기 훨씬 이전에 이미 여러 가지로 불려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은 중국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드넓은 땅 동쪽 끝에 있는 나라에 관해 기록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호를 적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유구한 세월, 숱한 족적이 지나갔지만 조선이라는 어휘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그 시원은 서력기원 훨씬 이전부터 출발한 것이다.
현존하는 고문헌으로서 조선이라는 국호를 담고 있는 중요한 책으로는 [관자(管子)], [전국책(戰國策)], [산해경(山海經)], [사기(史記)], 등을 들수 있다. [관자]와 [전국책]에는 조선이 모피와 철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소개되어 있고, [산해경]에는 무궁화가 많이 피고, 점잖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로 소개되어 있으며, [사기]에는 조선이라는 어휘에 대한 풀이가 되어 있다. 그중 가장 오래 된 것은 기원 전 칠백 년경에 씌어진 [관자]이다.
중국의 각종 기록에 우리나라는 해동(海東), 청구(靑丘), 진단(震檀), 동이(東夷), 근화향(槿花鄕), 대동(大東), 숙신(肅愼), 군자국(君子國), 동명(東明), 계림(鷄林), 한(韓), 접역, 등으로 불려왔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쓰여지고 있는 것은 조선이다. 조선 이외의 이러한 명칭도 한국인들에겐 결코 낯선 어휘들이 아니다. 그 역시 학교, 회사, 단체, 특히 각종 전문서적의 이름 앞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다. 그러나 조선만큼 자연스럽게 그리고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숱한 명칭 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조선이란 명칭만이 아직껏 어색하지 않게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 땅의 상서로운 내일을 짐작하게 하는 단적인 요소이다.
그 뜻에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기]에는 해가 뜨는 동녘 밖에 있기 때문에 조선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해뜨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 바로 조선이라 했고, 최남선은 ‘첫’이나 ‘처음’의 우리말에서 조(朝)를 택하고, ‘샌다’ 혹은 ‘신신하다’에서 선(鮮)을 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모두 조선이 해뜨는 곳, 밝아오는 곳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산해경]이나 [사기]는 고대 동아시아의 지리나 역사를 알아보는데는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하는 문헌들이다. 이런 기록에 오늘의 조선이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 실체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그 실체를 느끼게 될 때 조선이라는 말에는 내일이 있다. 다른 명칭들이 정체된 체 의미만을 간직하고 있을 때에도 조선은 밝은 내일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말은 문헌상으로만 해도 삼천 년 가까운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어제처럼 가깝고, 내일처럼 새롭다. 간단한 이 말 한마디 속에서도 민족은 얼마던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 1947년 전북 군산 출생
·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입선(작품 꽃메기)
·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입선(작품 김박사의 장난감)
· 방송, 출판, 잡지 기획업무에 다년간 종사
· 장편 <호민-전3권>, <서울아리랑>, <자동차도둑>, <조선 일 류 가객 박춘재> 등, 단편 <지하도의 성자>, <할아버지의 비 밀>, <해당화마을>, <무영인>, <부릅뜬 눈> 등.
· 그밖에 <임춘앵 전기>, <한국 최초 101장면>, <기인백선>, <여러분이시여, 기쁜 소식이 왔습니다> 등 전통문화 관련 저 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