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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2003년 12월, 한국소설가협회에서는 역사 인물 102인을 선정, 한 분씩 맡아 소설을 쓰기로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 아직 15인이 남아 있으니 어서 한 분 선택해 보라는 공문을 받았습니다. 거기 뜻밖에도 신사임당이 계셨습니다. 저는 적이 놀랐습니다. 겨레의 어머니로 추앙되는 이분이 어찌하여 여태 남아 있단 말인가.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그러나 모셔올 용기는 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께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어떤 사명감이랄까, 형언할 수 없는 집착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해는 공교롭게도 사임당 탄신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사흘 후, 마침내 떨리는 마음으로 협회에 통보를 했..
2003년 12월, 한국소설가협회에서는 역사 인물 102인을 선정, 한 분씩 맡아 소설을 쓰기로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 아직 15인이 남아 있으니 어서 한 분 선택해 보라는 공문을 받았습니다. 거기 뜻밖에도 신사임당이 계셨습니다. 저는 적이 놀랐습니다. 겨레의 어머니로 추앙되는 이분이 어찌하여 여태 남아 있단 말인가.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그러나 모셔올 용기는 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께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어떤 사명감이랄까, 형언할 수 없는 집착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해는 공교롭게도 사임당 탄신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사흘 후, 마침내 떨리는 마음으로 협회에 통보를 했습니다. 사임당 어머니를 모셔오겠노라고.

백 년만의 더위라는 2004년 여름, 매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읽으며 야무지게 피서를 하다가 더위가 조금 수그러들기를 기다려 오죽헌을 방문했습니다. 강릉의 시인 이충희 님의 친절한 안내로 곳곳을 둘러본 뒤, 율곡 교육원과 강릉시립 박물관에서 많은 자료를 얻어다 놓고, 사서삼경 등 사임당이 읽었음직한 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시공을 초월해 강릉 북평촌과 제 고향 광양군 진월면 수렛골을 들락거리면서, 또 서도를 즐기시던 제 조부님과 사임당의 외조부 이사온을 동일시하면서 사임당의 어린 시절을 그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 글은 많은 분의 도움을 받으며 완성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고, 2005년 1월부터 귀한 지면에 연재를 허락하신, 월간 <참 소중한 당신> 주간 차동엽 신부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연재하는 동안 계속해서 자료를 챙겨 주신 강릉시립 박물관 정항교 관장님, 제 질문에 기꺼이 응해 주시고 여러 가지 도움말을 주신 율곡 교육원 정문교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사임당 어른이 소설로 탄생한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추천의 글을 써 주신 김천주 주부클럽 회장님, 특히 매월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와 함께 도움말을 주시다가 과분하게도 추천의 글을 써 주신, 겨레의 큰 어르신이요 강릉 문학의 대부이신 신봉승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2년 남짓 연재하는 동안, 전화로 또는 편지로 저에게 기쁨을 주고 힘을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정으로 고마움을 전하며,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940년 10월 3일 전남 광양군 진월면 차동 마을에서 안경진(安坰鎭), 정귀임(鄭貴任)의 30여 명 손자손녀 중 여덟 번째 손녀로, 안상선(安尙善) 김순애(金順愛)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남.

1945년 해방 직후, 중앙청 인사과장으로 발령받은 부친을 따라 서울로 이사, 서소문정 화천동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냄.

1946년 전라남도 도청 인사처장으로 발령 받은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이사.

생일이 10월이라 취학을 못 하게 되자 서석초등학교 교사였던 큰 언니를 졸라 2학기 때 비공식으로 입학함.

1947년 전라북도 도청 상공국장으로 발령 받은 아버지를 따라 전주로 이사.

전주 풍남초등학교로 전학함.

1948년 부친이 초대 전주시장으로 발령 받음.

국어 시간에 편지 쓰기를 했는데, 시골 조부님께 쓴 편지가 선생님 눈에 들어 “너는 크면 문학가가 되면 좋겠다”는 칭찬을 받음.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로 휴교가 되자, 언니 오빠들의 책꽂이에서 책을 뽑아 읽으며 독서에 맛들임. 초등학교 5한년 어린이로 펄벅의 『대지』를 재미있게 독파함. 7월에 인민군들이 쳐들어와 집과 온 살림을 빼앗음.

그때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의 가난을 경험함.

7월 25일 부친이 피난지에서 유격대에게 학살당함.

1952년 전주 풍남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여자중학교에 입학함.

1953년 어머니가 남편뿐 아니라 모든 살림을 빼앗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함.

1955년 전주여자고등학교 입학.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조부님이 시골로 데려가 온갖 한약으로 다스렸으나 여름 방학 중 별세. 전남의과대학 재학 중인 오빠를 따라 광주여자고등학교로 전학함.

1956년 국어과 최정순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교지에 글을 발표하는 등 문학에 관심이 깊어짐.

1957년 우남 이승만 대통령 장학생으로 선발됨.

1958년 광주여자고등학교 졸업. 학비 조달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있을 때, 최정순 선생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조선대학교 장학생 시험에 응시, 문리과 대학 문학과에 입학함.

1960년 본격적인 국문학을 배우면서 『현대문학』 애독자가 되고, 황순원 선생님 작품에 매료되어 도서관을 뒤지며 모든 작품을 찾아 읽음.

선생님의 첫 시집 『방가』 『골동품』 등을 그때 읽음.

처음에는 시를 좋아해 많은 시를 베끼고 암송하다가 황순원 선생님의 단편을 접하면서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됨.

1962년 조선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과 졸업.

평소 원하던 교직 시험이 없어, 박정희 대통령 당시 처음 생긴 공보요원 시험에 응시, 고향인 광양군청 공보실 행정주사보로 발령 받음.

「광양공보」 발간 등 군 행정 홍보업무에 종사하면서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면서 외로움을 달램.

1963년 9월, 생애에 가장 큰 용기를 내어 황순원 선생님께 편지 한 장과 처녀작 ‘피어리어드’를 써서 우송. 답을 주시면 소설 공부를 하고, 답을 안 주시면 포기하기로 결심함. 얼마 후, 두 편만 더 보내라는 엽서를 받고 온 우주를 얻은 듯 기뻐함. 그 뒤 열심히 작품을 써서 우편 지도를 받기 시작함.

1964년 12월 실비아라는 이름으로 영세하고 가톨릭 신자가 됨.

1965년 1월 황순원 선생님이 서정범 선생, 황동규 선생 등과 남해안 여행길에 광양에 들러, 조부님이 계시는 진월면 차동 고향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심. 추천하기 전에 정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보고 싶었다고 하심.

1965년 『현대 문학』 2월호에 ‘월요 오후에’로 첫 추천을 받음.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사 채용고시에 응시, 전남여자고등학교 임시교사로 발령 받음. 사범대학을 나오지 않아 정교사 채용이 불가능했음.

1966년 『현대 문학』 3월호에 ‘아집’으로 추천 완료.

단편 ‘해후’ ‘흐르는 물처럼’ ‘풋과일’ ‘희생자들’ 발표.

여수여자 고등학교 정식 교사 발령을 받음.

1967년 3월에 광주 제일 여자 고등학교로 이동.

‘에메랄드 그리인’ ‘같은 얼굴’ ‘길 잃은 사람들’ ‘또 하나의 방황’ 발표.

10월에 공무원인 은영배와 황순원 선생님 주례로 결혼. 바로 사표를 냈으나 사랑하는 학생들을 그냥 남겨놓고 떠나올 수 없어 후임이 올 때까지 한 달 넘도록 무료 봉사함. 이에 교장선생님이 감사의 정으로 가르침을 받은 5개반 학생 전원을 기차역에 내 보내 환송케 함. 역에 모인 사람들은 물론, 기차를 타고 오던 사람들도 줄지어 서 있는 여학생들을 보고 놀람. 좋아하던 교직을 떠나는 슬픔과 함께 300여 명 제자들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 때문에도 눈물을 많이 흘려, 서울에서 데리러 온 신랑이 몹시 당황함.

1968년 『현대문학』 1월호에, 결혼 전에 써 두었던 ‘가을 그리고 산사’ 발표.

8월에 첫딸 영민 출산.

『현대문학』 9월호에 결혼 전에 써 두었던 ‘장례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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